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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한적십자사 총장은 왜 고발당했나

적십자사 단 한명 위한 규칙 신설
김태광 총장에게 임시숙박비 등 특혜
국민 아닌 김 총장을 떠받들었나
승인 2021.06.23 17:41
2021 인터넷신문 언론대상 공모작

[보도일 2021.03.26 12:06]

[더스쿠프=고준영 · 김정덕 기자] 호텔에서 법인카드부터 긁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멋대로였다. 그 후에 ‘셀프’로 근거를 만들었다. 그것도 ‘높은 사람’만을 위한 근거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규정에도 없는 비싼 사택을 얻으려 셀프 규칙을 활용했다. 자기 회사도 아니다. 국민의 헌혈로 얻은 수익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을 둘러싼 논란이다. 그는 왜 그런 걸까. 그에게 부역한 이는 누굴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 취재했다.

[대한적십자사는 별정직원인 사무총장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신설했다.[사진=뉴시스]]

김태광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지난 3월 8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된 것으로 확인됐다. 더스쿠프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김태광 총장은 내부규정이 없는데도 자신 또는 비서실용 법인카드로 ‘호텔 숙박비’를 결제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대한적십자사 일부 직원이 내부결재서류를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실제론 숙박비와 잡비로 썼지만 서류상으론 ‘출장비’로 쓴 것처럼 꾸몄다는 거다.

심각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김 총장의 호텔 숙박비 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뒤늦게 ‘내부규칙’까지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업무를 수행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법인카드를 (업무와 무관한) 숙박비에 쓴 것도 모자라 김 총장만을 위한 내부규칙까지 만들었다”면서 “이는 명백한 업무상 배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별정직’인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조직 내 서열 2위다.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명命을 받긴 하지만 인사관리를 사실상 주도한다. 정관상 임기도 없어 무한권력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사무총장이 법인카드를 맘대로 사용하고 대한적십자사 측이 결재서류를 허위로 작성했다면 심각한 문제다.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이번 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겠다”면서 “사무총장 선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선발 규정을 만들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더스쿠프가 A4 용지 12장 분량의 고발장과 그 이면에 숨은 논란거리를 단독 취재했다.

■11월 16일 이상한 결제 = 김 총장이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에 오른 첫날인 지난해 11월 16일.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에 거처가 없던 그는 대한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가까운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명동’에 투숙했다. 그날 밤 8시55분, 그는 자신에게 제공된 법인카드로 숙박비 6만500원을 결제했다. 일종의 임시숙박비였는데, 공적 용도의 법인카드로 이를 결제한 건 불법이었다. 대한적십자사에 ‘임시숙박비를 제공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은 이날 김 총장이 법인카드를 사용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재했다. “업무 인수인계 출장.” 의도적이었는지 단순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백한 오류였다. 실제로 이 오류는 며칠 후 진행된 법인카드 정산 과정에서 발견됐고, 11월 24일 환급 조치됐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김 총장이 비서실에 6만500원을 현금으로 줬고, 비서실 관계자가 이를 (대한적십자사) 계좌에 입금했다”고 말했다.

언뜻 오류를 바로잡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환급 절차는 의문투성이다. 무엇보다 환급 주체가 불분명하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김 총장이 현금을 비서실 관계자에게 줬다”고 주장했지만 내부에선 “비서실이 자신들이 모아놓은 과비課費로 대체했다”는 말이 나돈다. 명색이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가 명확한 지출입 근거를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

의문은 또 있다. 6만500원이 환급된 시기다. 대한적십자사 측이 환급 절차를 밟은 다음날인 11월 25일은 ‘단순한 날’이 아니다. 이날의 비밀은 뒤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11월 17일 또 이상한 결제 = 김 총장은 취임 다음날인 11월 17일 충북지사 출장길에 올랐다. 공식 일정은 1박2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김 총장은 17일 밤 서울 명동 퍼시픽호텔에 투숙했다(18일 오전 8시11분 법인카드로 숙박비 7만원 결제).

숙박만이 아니었다. 김 총장은 그날 밤 11시32분 세븐일레븐 명동역점에서 9100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잡비였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출장 계획이 그날 조정돼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은 김 총장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숙박비 7만원과 잡비 9100원의 목적을 ‘충북지사 출장’이라고 기재했다. [※참고 : 언급했듯 대한적십자사 내부엔 ‘임시숙박비 관련 규정’이 없다. 당연히 김 총장이 숙박비 7만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할 근거도 없다. 세븐일레븐 명동역점에서 밤 11시32분에 긁은 9100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김 총장이 그 시간에 편의점에서 공무公務를 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김 총장이 자신에게 지급된 법인카드를 쌈짓돈처럼 썼다는 방증이다.]

[김태광 사무총장은 내부규정이 없는데도 법인카드를 맘대로 사용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결국 이날 숙박비 7만원도 11월 24일 환급됐다. 김 총장의 숙박비 결제 내역에서 또 한번 오류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전날 숙박비와 마찬가지로 김 총장은 숙박비 7만원을 비서실에 현금으로 건넸고, 비서실 관계자가 계좌에 입금했다. 이번에도 지출입 근거를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김 총장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임시숙박비’에서 연달아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참고 : 이 지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대한적십자사는 김 총장이 밤 11시32분에 세븐일레븐에서 결제한 9100원은 환급받았을까. 답은 황당하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여비운영 기준에 따라 식비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 비서실 관계자는 김 총장이 9100원을 결제한 이유를 ‘충북지사 출장’이라고 기재했다. 허위다.]

■9일 만에 만든 규칙 = 11월 17일 이후 김 총장이 어디에서 묵었는지는 후술한다. 일단 김 총장의 임시숙박비 결제 정황이 포착되는 건 12월 들어서다.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은 김 총장이 임시로 묵은 퍼시픽호텔(서울 명동)의 숙박비를 12월 4일(5박 35만원), 8일(6박 42만원), 15일(8박 56만원) 각각 결제했다. 숙박비만 133만원(총 19일치)에 이르는데, 하루로 환산하면 7만원짜리 방에서 투숙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지금부터다.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은 12월 4일, 8일, 15일에 법인카드를 사용한 이유를 ‘(김 총장의) 임차지원비(임시숙박비) 지급’이라고 기재했다. 뭔가 이상하다.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대한적십자사엔 임시숙박비 지급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비서실 관계자는 내부결재서류에 ‘임차지원비 지급’이란 용어를 떳떳하게 기입했다. 그사이 관련 규정이라도 만들었던 걸까.

놀랍게도 그렇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김 총장이 채용된 지 9일 만인 11월 25일 새로운 시행규칙(주택자금대부시행규칙 제24조)을 만들었다. 그 시행규칙 24조의 전문을 보자.

대한적십자사 주택자금대부시행규칙 제24조(별정직원의 대여) 별정직원에 대한 주택 및 주택임차자금 대여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회장이 별도로 정한다.<신설 2020.11.25.>

이 시행규칙 24조를 근거로 대한적십자사는 12월 4일 김 총장에게 지급할 임시숙박비 등의 세부사항을 만들었다. 이는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별도로 정해야 하는 것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 총장이 묵을) 거처(임차물건)를 찾을 때까지 발생하는 임시숙박비를 지원한다. 지급기간은 11월 25일부터 임차 시까지며, 지원내역은 일 7만원이다….”

대한적십자사 비서실이 12월 4일, 8일, 15일 내부결재서류에 ‘임차지원비 지급’이라고 명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내부절차를 따랐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불법적 정황과 황당한 주장 = 대한적십자사의 주장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김 총장이 퍼시픽호텔에서 묵은 날짜와 법인카드 결제일이 다르다. 더스쿠프 취재결과, 김 총장은 11월 22~27일(5박), 11월 29일~12월 5일(6박), 12월 6~14일(8박) 퍼시픽호텔에서 투숙했다.

하지만 결제는 12월 4일, 8일, 15일 3일에 걸쳐 이뤄졌다. 숙박일과 결제일이 다른 이유는 알 수 없다. 누군가 먼저 결제한 숙박비를 12월 이후 ‘(취소 후) 다시 결제했다’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한적십자사 측은 ‘중대한 결함’을 남겼다. 그 결함을 하나씩 살펴보자.

김 총장의 ‘임시숙박비’ 지급을 위한 시행규칙이 신설된 건 11월 25일이다. 그런데 김 총장은 11월 22~27일 퍼시픽호텔에서 5박을 했다. 이에 따르면 11월 22일, 23일, 24일 3일치 임시숙박비는 대한적십자사 측이 제공해선 안 된다. 이날 3일치 숙박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했다면 ‘업무상 배임’이 성립될 소지가 크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숙박일과 결제일을 다르게 처리한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임시숙박비 규정이 없는 상태에선 김 총장이 호텔에서 묵을 수 없다. 하지만 김 총장은 11월의 상당 기간을 퍼시픽호텔에서 투숙했다. 문제 소지를 없애기 위해 모든 결제일을 12월 이후로 미룬 것으로 보인다.”

[※참고 : 대한적십자사 측은 “11월 22일, 23일, 24일 3일치 임시숙박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한 건 잘못이었다”면서 “여비정산 과정에서 발견해 환급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환급 조치를 한 날이 지난 3월 23일이다. 더스쿠프가 11월 22~24일 결제 문제를 거론하면서 취재에 들어간 지 며칠이나 지난 후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더스쿠프가 오류를 발견해 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황당한 주장이다.]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의 헌혈과 적십자회비로 운영된다. 그래서 대한적십자사 임직원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다.[사진=뉴시스]]

■김태광 총장만을 위한 규칙 = 여기까진 약과다. 11월 25일 신설했다는 시행규칙 24조에도 따져봐야 할 이슈가 숱하다. 김 총장이 사용한 ‘임시숙박비’의 근거를 마련해준 이 시행규칙은 ‘별정직원’을 위한 조항이다. 그런데 대한적십자사 직원 4000여명 중 별정직원은 김 총장 단 한명뿐이다. 김 총장만을 위한 규칙을 단 9일 만에 만들어 임시숙박비를 지원한 셈이다.

시행규칙 24조를 근거로 만든 김 총장을 위한 세부조항도 문제다. 임시숙박비 지급기간을 11월 25일부터 임차 시까지라고 정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특혜다. 김 총장이 임차할 거처를 구하지 않으면 임기가 끝날 때까지 호텔에서 묵을 수 있어서다.

하루 임시숙박비를 왜 7만원으로 결정했는지도 의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여비정산표에 7만원이란 기준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7만원은 일반 직원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사무총장은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 김 총장이 11월에 숙박한 퍼시픽호텔의 숙박비가 7만원이기 때문에 나중에 (7만원을) 끼워 맞췄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행규칙 24조와 세부조항이 공정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렇게 항변했다. “11월 25일 신설한 시행규칙은 회장에게 결재만 받으면 된다. 우리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시행규칙을 신설했고, 그 시행규칙을 근거로 세부조항을 만들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대한적십자사의 시행규칙을 만들 때 회장에게 승인만 받으면 끝이라면 그게 더 큰 문제 아닌가. 대한적십자사엔 엄연히 운영위원회ㆍ중앙위원회 등 심의ㆍ의결기구가 있는데, 이를 이유 없이 패싱해도 괜찮다는 건가.”

또 다른 한편에선 대한적십자사가 “내규를 제정ㆍ변경하려면 이사회의 회의를 거쳐야 한다”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17조’를 위반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법률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심의ㆍ의결기구를 거쳐 시행규칙을 신설해야 마땅하다.

임시숙박비 내용을 구체화한 ‘세부조항’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신 회장이 승인했다”고 밝혔지만 더스쿠프가 단독입수한 내부문건(시행규칙 개정에 따른 운영)엔 다른 정황이 담겨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세부조항을 전결한 이는 대한적십자사 기획조정실장이다.

세부사항을 회장이 정해야 하지만 회장 선까지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신희영 회장은 이런 의혹에 답을 하지 않았다. [※참고 : 대한적십자사 측은 “기조실장은 내부 위임전결 규정에 따라 예산 1억원 이하의 건을 전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면서 “이 권한은 회장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니 전결은 문제 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예산집행 과정에서의 얘기다. 시행규칙에 관한 세부사항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새 규정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운영시스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행규칙의 세부조항을 만드는 권한도 회장에게 있다. 실제로 시행규칙엔 ‘세부조항을 회장이 결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다른 셀프 규정 논란 =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신설한 규칙이 김 총장에게 또다른 특혜를 줬다는 점이다. 새 규칙을 근거로 김 총장에게만 값비싼 사택이 제공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대한적십자사 일반직원들은 ‘원거리 전보직원 주택ㆍ주택임차자금 대여 및 인사교류수당 지급 지침’에 따라 전세금 9500만원 이내(서울시 기준)의 사택만 임차할 수 있다. 그 외 지역의 전세금 한도는 8000만원이며, 특별한 경우에도 1000만원 이내에서만 증액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총장에겐 이 지침이 적용되지 않았다. 별정직원에게만 적용되는 새 시행규칙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대한적십자사는 2020년 12월 14일 김 총장이 거주할 집을 월세로 빌렸다.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ㄱ 오피스텔로, 임차보증금 5000만원, 월임대료 75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전세금으로 환산하면 2억4000만~2억5000만원이다. 일반직원이 거주할 수 있는 주택보다 전세금이 2.6배나 높다. 김 총장을 위해 새로 만든 시행규칙 덕분에 전세금이 1억5000만원가량 더 비싼 사택을 임차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어디든 감사기구가 있다. 국민의 헌혈, 적십자회비 등으로 운영되는 대한적십자사에도 감사실 등 감사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김 총장 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규칙이 만들어질 땐 어떤 감사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국민의 피’로 돌아가는 대한적십자사, 이래도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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